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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희망선 2012. 6. 8. 22:47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를 만나면 사람들은 자기 속을 들여다 볼 것 같아 조심스러워한다. 혹시나 자기를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볼까봐 불안 해 한다. 이런 태도는 한국사람들 뿐 아니라 미국사람이나 유럽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사람 들은 이처럼 심리문제에 대해 민감할까?

 

그것은 심리문제를 정신병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또 정신병은 정신이 이상해져 변질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문제라고 해서 신체질병보다 더 나쁘거나 이상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심리문제도 신체질병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 탓에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없어지는, 단지 우리에게 조금 불편한 현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문제는 밤에 이불을 제대로 안 덮고 자는 바람에 감기에 걸린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열이 나고 한기가 나다가도 약 먹고 며칠 푹 쉬고 나면 감기가 회복되는 것과 같이 심리적인 문제도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거나 혹은 심리치료를 받고 한동안 안정을 취하면 곧 원래상태로 회복된다. 심리문제는 신체질병과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으며, 문제가 있다 해도 그다지 걱정할 일이 못된다. 즉, 우리 모두 조금씩은 신체질환을 다 갖고 있지만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듯이 심리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신체와 마음에 대해 차별을 두는 데 있다. 즉, 길바닥에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친구와 대화 도중에 받은 상처를 그냥 무시하고 억누르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신체의 상처를 그냥 방치하면 곪아서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아픈 마음을 치료받지 않으면 점점 큰 병이 된다.

 

마음의 병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도 별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앓는 것도 아니다. 남들의 눈에 띄는 이상한 행동을 해야만 병이라고 볼 수 없다. 대부분 우리가 간혹 한번씩 하는 생각, 간혹 갖게 되는 심정, 불쑥불쑥 드는 충동들, 그런 것들 속에 이미 마음의 병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에 드는 예들은 임상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환자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의 친구들, 동료들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라 우리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덮어버리고 산다. 물론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들도 이런 것들을 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겨자씨를 겨자나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또한 아무도 겨자씨가 자라서 겨자나무가 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른도 안된 젊은 여성이 사는 것이 힘들다며 가끔가끔 드는 생각이 이제 죽어도 세상에 큰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모든 것이 시들하고 재미가 없고 무언가를 꼭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든다고 한다. 그런데 특별히 직장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에 두드러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심리검사를 받아보아도 정상수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느 부분에선가 병의 조짐이 보인다. 꿈을 부풀리며 날마다 의욕에 찬 기쁜 마음으로 일할 나이에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는 것은 막연히 느끼지만 그 이상은 생각할 수가 없다.

 

대학생 딸이 허리디스크가 생겨서 어머니에게 병원비를 좀 달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큰소리로 "사는 대로 살다가 죽지"하고 고함을 질렀다. 딸이 깜짝 놀라 쳐다보고, 어머니 자신도 놀라서 손을 입에다 갖다댄다. 돈이 그렇게 궁한 것도 아니다. 남편이 애를 먹이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알뜰히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했고, 이제 조금씩 형편이 풀려나가는 중인데 왜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갑자기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질렀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얼굴에 수심이 생겼고 자기도 모르게 가끔씩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은 남자친구에게 요구를 잘 하던데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선뜻 어떤 요구를 잘 못하겠다. 혹시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단념해버리고 상대가 해주기만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남자친구 중심으로 어떤 행동이 이루어지고 자신의 요구는 잘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가도 그쪽에서 조금이라도 내켜하지 않으면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런 자신이 때로는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왜 항상 자기는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릴 때도 항상 오빠에게 양보했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에게 늘 양보하는 자신이 속상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동료가 내게 부당한 행동을 했는데 항의하고 싶어도 그에게 되려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말을 못하고 참자니 속만 상한다. 늘 당하기만 하고 자기주장을 마음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도 하고 무력한 느낌이 든다. 그를 안 볼 수만 있다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매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라 정말 속상한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으니 참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척 속상하다. 요즘은 밥맛도 없는 것 같고 자주 우울해진다.

 

남편이 너무 시집일에만 신경쓰는 것 같아 한마디 했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화가 났지만 어릴 때부터 화를 내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참았다.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속이 상해서 보름동안 서로 말을 안했는데 결국 위장병이 생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낫지 않는다. 남편과 생긴 일이라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다보니 혼자서 쌓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는데 마음이 불안해지고 계속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괜히 트집 잡게 되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화를 낸다. 이러다가 말겠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어릴 때 아버지가 집안을 돌보지 않고 외도를 하여 어머니와 함께 고생하던 생각이 떠올라 자기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 것 같았다. 쓸데없는 생각이라 생각하고 떨쳐버리려고 해도 잘 안 되고 자꾸 안절부절 해지고 짜증만 났다.

 

이제까지 모범사원으로 매사에 깔끔하고 인정받으며 살아왔는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막연히 불안해지고 소화가 잘 안되고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혼자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별히 일이 더 힘든 것도 아니고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지 모르지만 새로운 상사에 대한 느낌이 불편한 것 같다. 그에게 결재를 맡으러 갈 때 몸이 긴장되고 편하지가 않다. 상사가 특별히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좀 말이 없는 사람일 뿐인데, 괜히 자신감이 없어지고 제대로 내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겠다. 그의 행동이나 인상이 어딘지 아버지를 연상케 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 을 통제하기 힘 든다.

 

심리치료와 공감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나을 것을 방치해두면 나중에 큰 병이 된다. 팔이 부러졌는데도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는 사람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도 그냥 혼자 속으로 눌러두는 사람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반드시 심리치료자나 정신과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직장동료든 자신이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사람이면 누구나 치료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만, 그런 상처를 치료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직장동료들이 있기에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에 상처가 생겼는데도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주변에 그런 상처를 달래줄 사람이 없을 때 발생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살게 되었거나 혹은 어떤 계기로 인하여 주변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겨 아무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상처는 방치되고 병이 된다. 이때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심리치료자는 상처받은 마음을 잘 이해하고 감싸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치료자는 편파 되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마음을 왜곡되지 않게 잘 이해할 수 있고, 전문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내담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다.

심리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리치료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와서 어머니에게 울면서 그 일을 이야기할 때 어머니는 잘 들어주고 나서 "그래 속상했겠다. 화가 많이 났겠어!"라고 말해줌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치료해줄 수 있다. 상사로부터 꾸중을 들은 직장인이 동료에게 하소연할 때 "그래요, 속상하실 것 같네요. 나라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정말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해줌으로써 동료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다.

 

심리치료란 한마디로 말해서 상대방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그가 느끼듯이 함께 느껴보고, 그렇게 느낀 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해줌으로써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이 타인에게 이해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에 의해서도 공유될 수 있다는 인식이 들도록 해주는 것이다.

 

공감받는 것이 어째서 치료효과가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서 항상 자신의 존재를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존재를 바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이며, 거꾸로 상처를 치유 받는 것은 나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바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고 느낄 때이다. 공감은 바로 상대방의 존재를 바로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치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내는 글>

공감이란 낯선 고장에서 고향친구를 만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애. 18년 전 이맘 때였어. 나는 독일행 비행기 안에서 북극 얼음벌판 위를 지나고 있었어. 창 밖을 내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막한 밤이었어. 한참 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에게 놀랍게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조그만 불빛이 따라오고 있었어. 난 그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나를 따라오고 있는 한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어. 난 그것이 에스키모 마을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일 거라고 생각했지.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이 행인을 만난 것만치 반가웠어. 그 순간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근데 그것이 비행기 날개 끝에서 나오는 불빛이란 걸 그때 밤비행기를 처음 타본 나로서는 몰랐던 거야. 공감이란 바로 외로운 북극하늘에서 만난 그 불빛 같은 거라고나 할까?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정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사람을, 그것도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 그것이 공감 받는 기분이라고 생각해.

 

우리를 진정으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상처받은 사건 자체보다는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우리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한다. 상처받은 마음도 아프지만 그것을 치유해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이 우리를 더욱 아프게 만든다. 때로는 나를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이 있어도 그들이 나의 깊은 상처를 이해해줄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더욱 외로움이 들기도 한다.

 

필자의 어떤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집 안 일도 잘 도와주세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움 없게 잘 처리해나가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도 남편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니까 그것이 항상 아쉽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없어요."

 

심리치료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될 일이지만 막상 필요한 순간에는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상대를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 되레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덧붙여 주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몇 번 당하고 나면 타인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위험스럽게 느껴져 마음을 닫게 되는 때도 많다. 상대방의 감정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느껴주고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공감이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심리치료 실습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어렵다고 해서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라면.

 

내면세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상대방이 그토록 바라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나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의 마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내 마음을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만 해당되는 말인가 ?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데 반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결국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함을 당한 사람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슷한 경험과 그때의 심정을 기억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들을 입게 되지만 성장환경과 상황에 따라서는 그 상처들을 치유 받지 못하고 억압하고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치유 받지 못한 마음의 부분들은 가리어져 본인 스스로에게 어두움으로 남는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비슷한 상처받은 마음이 있을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했듯이 상대에게도 그 상처를 이해해주기 보다는 덮어버리려고 하게 되고, 그 결과 상대에게 새로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치유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내면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잘못 본거야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은 우리 자신의 지각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안 보일 때는 눈을 흘기고 아버지가 보시는 앞에서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계모를 불신하는 것은 건강한 아이다. 비록 아이는 현재 계모로부터 구박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지각이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자라서 이 다음에 나쁜 계모에게 복수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어렵지만 꿋꿋이 견뎌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비슷한 상황이 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벌어진다면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즉, 아이는 자신의 지각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어머니에 대해 항의하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아이의 지각을 부정해버리고,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내가 잘못 본걸 거야. 어머니가 나도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지각을 부정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면 아이는 점점 자신의 지각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 이때 오빠와 차별대우를 받는 것도 상처가 되지만 자신의 지각에 대해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신의 지각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부당한 대우에 대해 계속 항의할 수 있고, 만일 그것이 받아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서만은 신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각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면 적전분열이 되어 행동목표를 상실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게 되며 결국 깊은 마음의 병이 된다.

 

한 여인이 갓난아기를 업고 막 두 돌이 되었을까 말까 한 아이를 걸려서 지하도를 올라온다. 양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아이가 계단을 다 올라와가지고는 갑자기 앞으로 폭 고꾸라지며 이마를 돌계단에 찧는다. 아이가 얼굴이 이지러지며 울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깜짝 놀라며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순간 아이 엄마가 고함을 지른다. "가만 놔두세요. 가만 놔두세요. 혼자 내버려둬야 돼요!" 아이가 어머니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파악한 듯 울지도 못하고 일어선다. 사람들이 속으로 혀를 차며 지나간다.

 

아이는 울고 싶지만 어머니가 받아주지 않으므로 울지 못한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마침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 속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상대가 자기에게 부당한 일을 해도 그것이 그의 잘못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 뭐라고 말도 못한다. 심지어는 그런 일을 당해도 분노나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지각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한 내담자는 남자친구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상해서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을 묻는 말에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눈물은 왜 나오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원래 눈물이 많은데 혹시 뇌기능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되물었다. 그녀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제가 좀더 친절하게 대했으면 남자친구가 화를 안 내었을 텐데"라며 자기비난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몸이 약한데 직장까지 다니느라 힘들어 딸에게 자주 신경질을 내고 그녀의 감정은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자기에게 뭔가 잘못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왔다. 대인관계에서도 자신감이 없어 타인이 자기를 싫어할까봐 항상 남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남자친구에게도 그녀는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너무 잘해주는데 그런 그녀에게 습관이 된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안 그러던 사람이 요즘에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트집을 잡아 화를 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불안해지고 자기가 뭔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자신이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비난

심리치료를 하다 보면 사람마다 갖고 오는 문제는 제각기 달라도 항상 거의 모든 내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자기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상처받은 마음 위에다 자기비난을 통해 스스로 상처를 더해 고통을 겪는 내담자들을 볼 때마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자기비난인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되지만, 그것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자기비난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한 내담자는 남편이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서 우울증에 빠졌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이기에 버림을 받은 것이라며 자신을 비난했다.

 

자기비난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순간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가 빌미만 있으면 튀어 나와 자신의 머리를 방망이로 내리친다. 이러한 자기비난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의 자기비난은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특히 부모로부터 들었던 말 혹은 대접들이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튀어 나오는 것들이다.

 

예컨대, "너는 안돼!" "돼먹지 않았어!" "틀려먹었어!" "안되겠어!" "너는 어디에 가도 환영 못 받아!" "못난 놈!" "빌어먹을 놈!" "너는 이기적이야." "넌 필요 없어!" "너는 도움이 안돼!" "저리 비켜!" "없어져버려!" 같은 내면의 목 소리가 그것이다.

 

이는 원래 외부의 목소리이지만, 우리 속에 오랫동안 인각되어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마치 우리 자신의 일부분인 것처럼 지각된다.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악영향으로서 평생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해로운 목소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것을 자각하고 과감하게 노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즐거운 싱글 모임
글쓴이 : 숨은그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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